드라마

[택배기사] 계급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감독의 희망을 보여주려 하다

구루아재 2023. 5. 2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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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이윤균 작가의 <택배기사> 웹툰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한 작품이 5월 12일에 6부작으로 개봉되었다. 이 작품은 [플란다스의 개]의 촬영부로 시작하여 [일단뛰어]로 장편 영화 감독으로 입봉을 한 조의석 감독의 영화이다. 그가 이전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회 계급에 대한 인식을 비틀어 표현하는 극본을 직접 연출하며 자신이 보여주려고 하는 사회의 계층화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한 드라마이다.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시작으로 [기생충] 등에서 계급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였던 시도들이 현재 국내외 많은 드라마에서 계층에 대한, 아니 계급에 대한 불합리적인 단면을 영상에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거 근대화기 이전에 양반, 중인, 상인, 천민 등의 계급이 존재하였고 계급 간의 이동은 상당히 제약되었다. 인도의 경우에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카스트 제도, 공산 국가에서는 공산당원과 일반 국민 등 다양한 형태로 사상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계급은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는 '돈'이라는 매개체에 대한 소유 정도로 부자와 빈곤한 자로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택배기사]에서는 난민이라는 신분에서 유일하게 일반구역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택배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짙고 해당 직업을 갖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어서 책으로 어떻게 되었는 지에 대한 자선전이 발간되어 있는 모습을 다룬다. 요즈음 대한민국에서는 청소년의 선망의 대상인 크리에이터나 연예인이 되기 위한 가이드 북이 서점이나 영상으로 넘쳐나고 있다. 이는 화려함 보다는 부를 가장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아주 적은 확률인 해당 직업을 얻기 위한 사회상을 '택배기사'라는 현재 흔한 직업군, 때로는 일반인들에게서 갑질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선망이 대상이 되기도 하는 직업 종사자가 계급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하게 그려진다. 

이는 상당히 모순적이다. 누구나가 택배를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주문한 상품을 받기 위해 회사에서 고용하거나 용역을 통해 택배를 제공하는 현대에서 택배기사는 내가 주문한 상품을 제공해 주는 피고용인이 되는 것이며 이런 피고용인이 결국은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는 드라마의 줄거리. 과거에도 그렇지만 세상의 변화, 아니 변혁은 다수의 민중이라 칭하기도 하고 국민, 시민이라도 칭하는 피공용인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도 피고용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봉기하면서 고용인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대한 불합리성을 고친다. 

 

상당히 꿈같은 결말이기도 하지만 개연성도 '류석(송승헌 분)'의 황당하고 허무한 패배는 이런 변혁이 너무나 쉬운 것이라는 허구를 꾸역꾸역 시청자에게 강요하고 있는 느낌이다. 총 6부작에서 5부작까지 불합리한 계급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렇게 변화에 대한 시도들이 실패하다가 갑자기 해당 사회를 설계했던 사람의 청사진을 입수하게 되며 싱겁게 류석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모습은 허무함을 넘어 과도한 해피엔딩이다. 

 

돌연변이이며 난민인 '사월(강유석 분)은 왜 그토록 '택배기사'가 되려고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모호하다. 단지 '정슬아(노윤서 분)'가 피살당했고 정슬아가 사월이 '택배기사'가 되면 좋겠다고 얘기한 것을 이뤄주기 위해 그렇게 매달린 것인지. 그리고 피습을 당한 후에 돌연변이라서 다시 살아난 이후에 기억 상실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의 기억이 상실된 것인지가 보면서도 헷갈린다.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머리만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명이라는 대기업이 '공기'를 장악하며 대통령이 통솔하는 정부도 기업인 천명과 공조, 아니 통제를 받는 모습은 감독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설정일 것이다. 하지만 천명이 통제하면서 난민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숙청을 진행하기도 하는 것. 이것은 현재 난민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꼬집어 보려는 의도인가? 

 

현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은 '사월'의 친구들 이름에서도 보인다. '무쓸모' '멍' '멍멍' 등으로 칭한것은 위트라기 보다는 난민들에 대한 시각을 비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세부적인 요소에까지 미친 감독의 집착이 오히려 스토리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결말이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너무 허무하게 권선징악이 된다. 

 

오랜만에 김우빈이라는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액션이 가미되며 나름대로 계급사회 문제를 말하고자 한 작품.. 그런데 그렇게 몰입도나 감동 보다는 아쉬움이 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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